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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옳지 않은 시선
버지니아 울프를 알게 된 것은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 때문이었다. 고작해야 한 행에 언급되는 ‘버지니아 울프’라는 시구 때문에 버지니아 울프의 세계와 접하게 된 것이다. 그 구절은 이러하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시의 허무주의적인 성격을 잘 살리기 위해 그녀의 이름을 택했다고 설명이 되어있는 해설서의 말을 뒤로하고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찾아보았지만 어려워서 포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몇 년 뒤에 다시 본 『댈러웨이 부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짝사랑이 몇 년 간 이어지다가, 작품을 읽는 것을 더이상 미루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자기만의 방』을 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포함된 시리즈였다. 책을 사고나서 보고만 있어도 뿌듯한 기분은 며칠 간 이어졌다. 책을 읽으려고 책장을 넘기고 나는 책날개로 시선을 옮겼다. 책날개에 적혀있는 울프에 대한 소개는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책날개는 울프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 Virginia Woolf

1882년 런던에서 태어났고 당대 최고 수준의 지적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문예 비평가이자 사상가였던 아버지 레슬리 스티븐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오빠 토비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한 후 리튼 스트래치, 레너드 울프, 클라이브 벨, 던컨 그랜트, 경제학자인 케인즈 등과 교류하며 ‘블룸즈버리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 평생에 걸쳐 수차례 정신 질환을 앓았으며 1907년 『타임즈』 문예 부록에 서평을 싣기 시작하면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등 20세기 수작으로 꼽히는 소설들과 『일반 독자』와 같은 뛰어난 문학평론, 서평 등을 발표하여 영국 모더니즘의 대표적 작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소설가로서 울프는 내면 의식의 흐름을 정교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면서 현대 사회의 불확실한 삶과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 평화주의자로서 전쟁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쳐왔던 울프는 1941년 독일의 영국 침공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신 질환의 재발을 우려하여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이미애 옮김, 민음사, 2006)

가장 눈에 거슬리는 부분은 ‘당대 최고 수준의 지적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환경에서 성장했다.’라는 문장이다. 물론 아버지는 영국에서 이름난 문인이고 어머니는 예술가적 기질이 풍부한 패틀가의 사람이라고는 하나, 이 둘의 영향이 버지니아에게 긍정적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우울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었고, 자신의 모든 정신적인 것을 아내인 줄리아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아내가 죽은 뒤로는, 딸 스텔라에게 줄리아가 지녔던 모든 짐을 떠맡겼다. 이런 집안에서 자란 버지니아는 어머니에게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였으며, 심지어는 의붓오빠들은 버지니아를 성적으로 학대를 한다. 공부라는 것은 전통적으로 집안의 남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었기에 버지니아와 그의 언니들은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각주:1]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는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교육이라는 것을 위해서 남자라면 필요도 없었을 어마어마한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을 저 괴상한 문장으로 함축을 한다는 것은 잘 못된 것이다. 게다가 저 소개문을 쓴 출판사는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을 수 있는 큰 출판사가 아니던가.

‘리튼 스트래치, 레너드 울프, 클라이브 벨, 던컨 그랜트, 경제학자인 케인즈 등과 교류하며 ‘블룸즈버리 그룹’을 결성하기도 했다.’라는 것인데, 이게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느껴지는지 잘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저런 환경이 그냥 주어졌다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저 문장도 많은 것을 깎고 자른 것이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딸들을 완벽하게 억압한 아버지가 긴 투병으로 병사를 한 뒤, 버지니아는 크게 신경증을 앓는다. 이 때에도 버지니아는 소위 의사라는 것들이 행하는 횡포와 무지, 그리고 오만함을 겪고 그것에 대해서 필사적으로 사색을 하고 그것으로 정치의식을 키웠다. 아버지가 죽은 뒤, 블룸즈베리로 이사를 가서 위에서 말하는 ‘블룸즈베리 그룹’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활동을 했다. 이 활동을 하면서 버지니아가 많은 것을 보고 배운 것은 맞다만, 버지니아는 이것에 속한 남자들과 자신의 차이를 극명하게 깨달았고 더욱더 외로워질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교육받은 남자들이라는 공통점으로 많은 것을 지닐 수 있었기에 교육받지 못한 여자라는 존재는 홀로 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실상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소개는 옳지 않다.

많이 흥분했다.



혜아룜이 쓰다.

  1. 『버지니아 울프 : 살아남은 여성 예술가의 초상』, 김희정, 살림, 2004 [본문으로]
혜아룜
http://acidrhyme.tistory.com/trackback/72 관련글 쓰기

'버지니아 울프' 단편소설집
필그레이's 컬처 파르페
버지니아 울프...단편소설집 을 오~래전부터 읽고 있는데 영 진전이 없다. 지루하다. 그녀가 문학에 끼친 지대한 영향력은 익히 들어 알고 있고 당연히 존경받아야하는 페미니스트라 인정하지만 어째 21세기를 대강 살고 있는 내겐 꽤 지루하다. 왜일까. . . . 버지니아 울프...그녀는 사실 박목월 아니 '박인환'...시인의 more.. 늘 이렇게 긴가민가 헷갈리는 게 있다...갠적으로 멍게와 해삼이 헷갈리듯..-_-;; (남들한테 아무리 물어봐도 나만..
  2008/02/12 00:14 | link | edit or delete | write reply 
버지니아 울프라.... 워낙에 문학에는 문외한인 저라 얼핏 이름만 들어봤을 뿐이네요... 하지만, 그녀에 대한 소개글에 대한 일침은 참 공감이 가네요
  2008/02/12 00:23 | link | edit or delete  
저도 아직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은 읽지 못 한 상태예요. 다만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개괄적인 작품에 대한 해설을 담은 문고판 책을 하나 봤는데, 그것과 민음사 판의 소개글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포스트를 올렸네요 :) 음, 모더니즘이라는 것 자체가 좀 대중들이 접근하기가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포스트에 공감을 하셨다니 정말 기쁜 일이네요:D
  2008/02/12 01:20 | link | edit or delete | write reply 
그러게요.출판사마다 해석이 달리 나오고 저자에 따라 다르고 그런가봅니다.^^;;; 저는 오래지 않은 과거에...버지니아 단편집을 사서 읽었거든요.미발표작품까지 실어놓았다길래 더더욱 기대하면서말예요...근데 사실...그녀를 존경하지만 책은 좀 지루해요.ㅜㅠ 결국 좀 읽다 다른 책 읽고 있어요.하지만 언젠가 꼭 다 읽고 말겠다는 의지를 아니 의지만 불태우고 있어요.ㅜ_ㅜ

언젠가 혜아룜님도 한번 꼭 시도해보세요.^______^

참...인사먼저 했어여하는데.처음 인사옵니다.^^ 어찌어찌 거쳐서 방문하게 되었어요.
안녕하세요.반가워요.^_^ 그리고 트랙백 쏘아볼께요..^^
  2008/02/12 11:01 | link | edit or delete  
저는 저것을 보고 왠지 본문까지도 의심이 되어서 읽지 않고 있어요. 소개글을 보고 너무나도 놀랐는지라. 필그레이님의 블로그에 가서 그 글을 봤답니다. 저야말로 먼저 찾아갔는데도 불구하고 그냥 흔적없이 스르륵 왔는걸요... 단편집이라고 하니 무척이나 땡기네요. 영국에서도 전집이 참 우여곡절 끝에 나왔다고 하더라구요. 게다가 양도 방대하다고 하던데... 저도 단편집을 사서 한 번 읽어보아야겠네요:) 그런데 저도 《댈러웨이 부인》을 보다가 저도 좀 졸았답니다. 그 스토리를 따라가기가 좀 벅차더라구요. 그래서 슬며시 책을 내려놓은;;; 저도 트랙백 쏩니다~
  2008/02/12 17:15 | link | edit or delete | write reply 
이 글을 읽다가 어딘가에서 버지니아 울프 얘기를 봤는데 이러면서 댓글도 분명 남기고 왔는데 이러다가 위의 리플을 보고 트랙백을 보고 알아챘어요.
저 출판자의 편집인은 미사여구란 뜻을 잘못 해석한 모양이죠? 독자는 바보라고 생각하고 괜찮아, 적당히 좋은말들만 모아 써놔...그런건가보죠
제대로 번역이 되었는지도 알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나저나 외국소설은 왤케 멀기만 한지..-_-;;
델러웨이부인은 소설이나 영화나 너무 어려웠어요. 근데 배우들 연기는 좋았던 기억이 나요. 근데 진짜루 무진장 졸면서 보았던 기억은 확실히 나요
  2008/02/12 23:48 | link | edit or delete  
저도 필그레이님 글읽으면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셨다는 것을 알았어요. 특히, 그 《목마와 숙녀》부분이요~ 개인적으로 상당히 신뢰감을 가지고 있는 출판사여서 그런지 저 일로 많이 기분이 나빴어요. 미미씨님 말씀처럼 독자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구요. 저 포스트를 작성하면서 어찌나 흥분을 했던지. 저 글을 단숨에 적어내려갔다니까요. 헉헉... 저는 《댈러웨이 부인》에게 호되게 혼난 뒤로는 울프의 작품에 손을 대기가 힘들더라구요. 그래서 책만 썩히고 있어요... 저는 이상하게 일본 소설에 엄청나게 거리감을 느끼고 있어요. 왠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도 먼 당신이랄까. 보기가 꺼려지더라구요. 그래서 이번에 한 번 그 벽을 깨볼 심산으로 《인간 실격》을 샀는데 어떨지 잘 모르겠어요.
  2008/02/12 19:55 | link | edit or delete | write reply 
버지니아 울프 아버지..... 굉장히 보수적이고 틀에 박힌 엘리트 성향이었다고 하죠.
아버지 자신도 끊임없이 주입식 공부를 하고 시험에 통과하고 학위를 따는 반복적인 삶 속에서 자기 자신의 색깔을 잃은 거겠죠.
자신에게는 없는 창의성을 딸이 가진 것을 인정할 수 없는 게 아니었던가 싶기도 해요.
  2008/02/12 23:50 | link | edit or delete  
아무래도 그 시대적 상황이 그렇게 만든 것이겠죠?? 울프가 살던 당시의 상황은 여자는 교육이라면 꿈도 못 꾸었을 때이니까요. 그렇지만 울프의 아버지의 그 태도는 정말 경멸적이었어요. 딸마저도 그 자아를 꺾어버릴 정도의 가부장적인 태도와 몸짓. 이런 것을 읽고나서 저 소개글을 읽으니 어찌나 분하던지. 민음사에 글이라도 하나 올려야겠다니까요. 이런다고 받아 줄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
  2008/02/13 23:56 | link | edit or delete | write reply 
많이 흥분하실 만도 하네요. 버지니아 울프에게 환경의 혜택이라고 할 만한 건 별로 없을 텐데... 저 시대 여자들은 다 비슷한 상황이었을 테고요. 집안이 부유하든, 가난하든... 개인적인 노력으로 이룬 걸 환경의 유복함에 슬쩍 갖다 얹어버리다니... 블룸즈베리 그룹도 실상 그렇죠. 그 안에서 남자 작가와 버지니아 울프는 절대 평등할 수 없었는데... 저도 기분 상하네요.
  2008/02/14 01:56 | link | edit or delete  
그죠, 정말 저 소개글 보고 많이 흥분했어요. 민음사 홈페이지에 가서 주저리주저리 글을 쓰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런 게시판이 잘 보이지 않네요. 다시 가서 찾아봐야겠어요. (나름 이런 피드백이 있어야한다고 생각) 저 소개글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가 제일 궁금해요. 아마도 울프에 대해서 어느정도의 지식(?)이 있는 사람이 썼을 것이라고 예상을 하는데, 그런 사람이라면 더더욱 이런 글을 썼다는 것 자체에 화가 나네요. 환경으로 모든 것을 돌리다니. 울프가 들으면 화내겠어요!! 그래도 울프가 위대한 문학적 업적을 남긴 것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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