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2010/06/17 06:23 in from cover to cover|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지은이 : 김진석 펴낸곳 : 개마고원 |
* 경희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다.
쓸데없이 교양 프로그램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학교지만 몇 가지 괜찮은 구석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글쓰기 수업과 토론 수업을 졸업하기 전까지 반드시 수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교수가 모든 수업을 커버하지 않기에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의 스타일과 궁합이 잘 맞아야 한 학기를 수월하게 보낼 수 있는데 강의복이 따르는 터라 이번에도 비교적 좋았다. 학기 중에 총 네 권의 책을 다루었고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모두 달랐다.
첫번째 책인 『총, 균, 쇠』가 인간의 역사를 거시적인 측면에서 되돌아보면서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종에 대한 편견을 깨뜨릴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하였다면 『타자로서의 몸 몸의 공동체』는 세계가 아닌 몸으로 시야를 좁혀 몸의 정치학을 다루었다.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제목에서부터 그 주제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자들은 누구이며 이들이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행동하는지 그에 대한 촘스키의 생각을 담고 있다. 마지막으로 『니체는 왜 민주주의를 반대했는가』는 후대의 철학자들이 의도적으로 삭제하거나 무시하였던 니체의 반민주주적인 요소들을 전면에 내세워 지금까지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은 된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사고가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 꼬집고 있다.
네 권의 책을 통해서 수업을 통해서 교수님께서 궁극적으로 말해주고자 하였던 것은 일차적으로 책을 읽고 이를 기반으로 토론을 하는 능력이었다. 이를 가지고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성찰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것도 역시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대학大學이라는 공간에서 진정한 대학생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 것이며 지식인은 어떠한 행동을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촘스키가 “지식인은 정부의 거짓말을 세상에 알려야 하며, 정부의 명분과 동기 이면에 감추어진 의도를 파악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많은 부분에서 교수님은 자율과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한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수업은 토론이 종료된 그 날 끝난 것이 아닐 것이다. 강의는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립하고 그것을 끝없이 앞으로 밀고나갈 때 그때서야 겨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Friedrich Wilhelm Nietzsche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의 주장들을 읽기 위해서는 ‘권력에의 의지’와 ‘강자’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필요가 있었다. 책이 크게 두 가지 면─민주주의에 대한 니체의 비판과 니체를 사유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을 다루고 있고, 이 측면들이 모두 앞의 두 가지 키워드와 관련이 깊었다. 전자는 말 그래도 권력에의 의지와 강자라는 니체의 철학을 중심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니체의 비판을 말하고 있다면, 후자는 니체 이후의 철학자들이 니체를 다룰 때 그들의 작업을 거치면서 니체가 얼마나 많이 오해되었으며 특정한 주제에 대한 니체의 ‘정치적인’주장들을 무시해버리는 등 니체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가 얼마나 많이 자행되었는가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우선, 뒷 주제는 들뢰즈와 데리다의 해체 작업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저자가 비교적 강하게 발언하였던 미시적 파시즘에 대한 주장도 같이 언급된다. 이들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 대한 작업은 니체의 작업에서 현실성을 빼앗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즉, 니체의 텍스트에서 정치적 측면을 배제시키는 부작용을 낳는 경향을 내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저자는 ‘권력에의 의지’를 ‘힘에의 의지’로 번역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권력을 힘이라고 옮기는 순간 니체가 권력이라는 단어를 쓰면서 의도하고자 하였던 미묘한 뉘앙스를 그대로 묻어버린다. 니체가 생각하였던 인간 행위의 동기,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함과 그 속에 있는 정치적 함의가 무시된다. 저자는 힘의 질서와 권력의 질서는 다르며 니체가 힘의 질서에 호소하였다고 하여도 이를 넘어서는 권력에의 의지가 니체가 진정으로 의도하였던 것이라 말한다.
이와 함께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다루어지지만, 니체가 말하고 있거나 저자가 니체가 다루고 있다고 말하는 페미니즘과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이 달랐다. 우선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자가 남자가 되고 싶어하는 걸 말하는 게 전혀 아닐 뿐더러, 포스트페미니즘의 일부를 니체가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니체가 주장하였던 여성의 것 혹은 여성의 진정한 힘이라고 하는 것들이 과연 있는 것인지도 의아하다. 물론 과학적으로 평균적인 차이가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건 그게 아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한장에 걸쳐서 나오고 있지만 그다지 마음을 끌지 않았고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하였다. 마치 이런 주제가 던져지면 반사적으로 나오는 “남자는 군대를 가잖아요.” 느낌을 받았는데 이건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이겠거니 하지만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다라는 걸 떠올렸다.
가장 저자가 공을 들였다고 생각하는 것은 역시 첫번째 주제이다.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하였을까? 저자는 니체가 말하였던 주장들을 민주주의 비판의 키워드 1, 2, 3으로 나누어서 정리하고 있다. 세 가지 키워드들은 각각 ‘위대한 정치’, ‘강자의 고귀함’, ‘격차의 열정’이다.
The Economist's Democracy Index survey for 2008 (인덱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http://en.wikipedia.org/wiki/File:Democracy_Index_2008.png 에 나와있다.)
니체는 민주주의가 인간을 무리 짐승으로 만드는 대표적인 정치 체계라 생각하였다. 이에 대항해서 격차의 파토스를 지향하는 정글과도 같은 사회 구조를 만들어내었고 인간은 그곳에서 자신의 맹수와도 같은 본능과 본성을 앞세워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인간이 하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선함과 좋음이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주지시키면서 약자의 원한을 감싸주는 도덕을 폄하하고 도피처가 되어버린 신을 부정하며 평등이라는 캐치프라이즈를 내세우는 민주주의를 가차 없이 깎아내린다.
이 책이 자세하게 말하고 있지 않지만, 니체는 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니체는 현재의 인간이 인간 진화 과정 속에서 나타나는 중간 단계에 불과하며, 인간을 기다리고 있는 미래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최후의 인간’이다. 최후의 인간이라고 하여서 나름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전혀 그렇지 않다. 『세상의 모든 철학』에서는 니체는 최후의 인간을 이렇게 묘사하였다고 설명한다. “니체는 동일한 저작1에서 그와 다르게 '최후의 인간'이라는 한 인물을 소개하고 있다. (...) 최후의 인간은 최고의 부르주아지이자 확신에 찬 공리주의자이며 아주 게으르고 비활동적인 인물이다. 최후의 인간은 "우리는 행복을 찾았어"라고 말하며 어리석은 만족 속에서 눈을 깜빡인다.”(-405쪽) 그리고 다른 하나는 니체가 긍정적으로 바라본 바로 그 초인이다.
니체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해야하는 행동은 인간이 지닌 존엄성을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라고 보았고 민주주의는 이것을 찾아낸 초인이 나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라 보는 듯하다. 인간의 발전을 가로막는 ‘그’ 사회 구조는 이와 같은 이유로 바람직하지 않으며 비판 받아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기 때문에 격차에 대한 열정이 니체에겐 매우 긍정적인 것이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삼는 위대한 정치와 거기에서 비롯되는 강자의 고귀함을 높이 칭송하였던 것이라 보인다.
니체의 철학은 인간의 존엄성의 발로라는 점에서 정말이지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 책을 쓴 저자 스스로도 니체가 가진 한계점을 잘 알고 있었다. 니체의 이러한 발언들은 모두 철학사적 작업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이 틀 안에서 이해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플라톤을 비판하였지만 인간의 정신과 철학을 그 어떤 것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 점은 플라톤과 동일한 니체였으며 이러한 위치가 그가 말한 반민주적인 성향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철학을 철학이 아닌 현실로 가지고 오려고 하였던 점에서 실수를 범하였고 얕은 지식이지만 하이데거도 동일한 실수를 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니체가 자신의 저작을 썼던 당시의 상황 역시 지금과 많이 상이하기 때문에 지금의 민주주의에 직접적으로 대응시켜 이해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도 지적한다.
민주주의는 니체가 생각하였던 것과 이미 많이 달라졌고 그 때로 돌아가기에는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 와서 니체가 말한 귀족주의적 보수주의를 선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해보이지도 않는다. 겉으로 평등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나 자유라는 신념도 중시여기는 것처럼 그 안에서 경쟁과 싸움을 인정한다. 물론 그게 니체가 말한 진화와 만족스러울 정도로 어울린다고 보지는 않지만 말이다. 저자가 지금 니체를 가지고 나온 것은 오리무중인 현실에서 우리가 길을 찾아내고 그 길을 따라가야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을 아닐까 착각해본다.
덧. 책은 한 가지 과제를 남겨주었는데, 그건 니체와 관련된 책들을 읽어보라는 것이다. 실은 이 책이 ‘정말’ 재미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름대로 재미도 주었고 감동도 줬다. 니체가 말한 것들을 다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간간이 통째로 인용한 문구들은 읽고 싶다는 마음을 손톱 만큼 긁었다. 미루기 선수인 터라 언제부터 읽을지 나도 모르지만, 제목부터 무서워서 책 목록에서 째려만 보고 있었던 책들의 장벽이 벽돌 하나 쯤은 무너진 것 같아 기쁘다.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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