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작은 빕스였다. 일전에 한 번 가보고는 그닥 끌리지 않았던 곳인데 언니가 먹고픈 것이 있다고 해서 그곳으로 갔다. 어디 얻어먹는 사람이 메뉴 결정권이 있는 것이냐. 나는 입 다물고 따라갔다. 언니가 먹고픈 것은 런치 메뉴에 있었는데 사진을 보는 순간 눈을 의심하였다. 실로 요상해보였다. 언니와 나는 그길로 메뉴를 바꾸었다. 채끝살로 만든 스테이크. 그래, 채끝살이 맛있지. 종업원은 말했다. “어느 정도로 구워드릴까요?” 고민에 잠겼다. 무난하게 가느냐 아니면 모험을 해보느냐. 미디움을 먹을 것이냐 레어를 먹을 것이냐. 언니는 모험을 그리 좋아하지 않고 나는 모험을 좋아한다. 결국 언니가 이겼다. 고기가 나온 것을 보니 딱 괜찮은 상태였다. 맛이 좋았다. 그렇지만 사이드 메뉴는 조금 거시기 하였다. 나를 울렸던 발사믹 식초.
빕스는 샐러드바 때문에 가는데 천안점은 약간 부실하다. 부산 서면 쪽은 준수한 편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천안점은 뭔가 오묘하다. 메뉴는 많은데 먹을 것은 없다. 뭘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 좋아하는 샐러드는 없었다. 샐러드 소스는 가볍지 않았고 마요네즈가 한 몫을 잡고 있었다. 나는 담박하게 먹고 싶어서 다른 것을 골랐다. 언니는 나와는 다르게 온갖 것을 집어서 왔다. 나는 자몽이 좋았다. 처음 맛은 썼고 즐기고 싶지 않았지만 이게 사람을 당기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계속해서 자몽을 먹었다. 얼마 뒤 자몽을 담고 있는 그릇에 새로이 자몽이 채워졌다.
빕스에서 언니와 나는 오만원을 쓰고 나왔다.
* * * * *
밖으로 나오니 비가 쏟아졌다. 우산 하나에 몸뚱아리 두 개를 싣고 종종 걸음으로 야우리를 향해서 걸었다. 일단은 야우리를 섭렵하였다. 우리는 일층부터 맨 꼭대기층까지 휘젓고 다녔다. 세일 기간이라 삼심퍼센트에서 오십퍼센트를 세일하였다. 여름 옷도 세일에 들어갔다. 시즌 오프된 옷들은 무려 팔십퍼센트까지 세일을 하는 아량을 보여주었다. 언니는 실습을 나갈 일이 있어서 얌전한 옷을 사고 싶어 하였다. 세일을 하는 옷들은 모두 화려하고 여성스러워서 우리는 눈을 흘겼다. 이것 저것 보러 다녔다. 언니는 흰색 면으로 만든 나폴나폴 거리는 블라우스를 샀다. 옷의 몸통 부분은 면이고 다른 디테일한 장식들은 까실까실한 소재였다. 가슴 한복판에 리본이 떡하니 자리잡혀있었다.
갤러리아는 야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비싼 옷이든 값싼 옷이든 비슷한 디자인 일색이었다. 요즘 대세가 미니 원피스에 조끼인 것은 패션에 그리 관심이 없는 내 눈에도 보였다. 내 눈에 들어온 아이가 하나 있었다. 피케 셔츠의 길이를 길게해서 입는 원피스였다. 흰색에 빨간 꼿이 하나 박혀있었다. 겐조의 히트 향수인 ‘Flower By Genzo’의 꽃처럼 보였다. 나는 사고 싶었지만 그냥 옷걸이에 두고 왔다. 이뻤는데. 조끼들은 기본형도 있었지만 조금 변형된 형태들이 많았다. 엘르에 마음에 드는 조끼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검은 색에 소매나 단 끝의 마감은 실크로 되어있었다. 고급스러워보였다. 하나 사고 싶은 마음에 태그를 보고 놀랐다. 천쪼가리 하나에 십만원이 훌쩍 넘었다. 나는 바로 잊었다, 그 조끼를.
* * * * *
주인공은 빕스도 아니고 옷도 아니었다. 커피였다. 이 도시가 날로 팽창을 하는 건지 발전을 하는 건지 이런 저런 것들이 근래에 많이 들어왔다. 야우리 지하 즈음에도 그 모습이 엿보였다. 커피빈이 입점을 하였다. 거기에서 조금 쉬다가 다시 쇼핑을 하자고 해 일단 그곳으로 갔다. 눈이 좋지 않아서 언니가 메뉴를 하나하나 읽어주었다. 그러다가 내 귀를 이끄는 메뉴를 들었다. 아이스 에스프레소. 딱 걸렸다. 나는 이거 마신다. 언니보고 주문을 하라고 하고 나는 자리를 잡았다. 언니가 온다. 언니가 말한다. “점원이 묻던데?” “뭐라고?” “그냥 그 메뉴 주문하시는 거 맞죠. 그러던데?” “그거 먹을 건데 무슨 태클?” 나는 알았어야했다.
시간이 지나서 커피가 나왔다. 언니는 달달한 아이스 카라멜 커피였다. 여대생 입맛. 내 건 투명한 갈색에 얼음이 동동 띄어져있는 모습이었다. 정갈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얼른 빨대를 꽂아서 한 모금 마셨는데 뭐지? 한약재를 통째로 씹어 삼키는 이 맛은? 사천백원이나 하는 이 커피를 나는 버릴 수가 없었다. 안 먹을 수가 없었다. 거기에서 준 시럽을 넣어도 쓰고 설탕을 넣어도 써서 나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커피가 내 목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 움찔거렸다. 나중에는 저지방 우유까지 쏟아넣었다. 그제야 쓰지 않았다.
* * * * *
오랜만의 외출에 친구 얼굴도 보았다. 교보문고에서였다. 다 집어치우고서 나는 반가웠다.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친구를 껴안았다. 나의 베스트 프렌드. 내가 아무리 연락을 하지 않아도 그러려니 받아주는 내 친구. 이렇게 반가운데 왜 내가 너를 만나려고 하지 않았을까. 근데 왜 이렇게 얼굴이 탓어. 안 본 사이에 애가 훌쩍 나이를 먹었다. 내 친구의 얼굴을 보니 그저 안쓰러웠다. 얼굴이 왜이렇게 탓냐고 물어보니 알바를 하느라고 탔다고 대답한다. 뭘하길래 그리 얼굴이 탄건지. 선블록이라도 잘 바르고 다니지. 친구는 그래도 얼굴이 유해졌다. 무인도에 가져다 놓아도 너는 흥 나는 흥하면서 혼자서 잘 살아남는 생활력에, 니들은 짖어라 나는 간다라는 마인드의 소유자였는데 말이다. 부드러워졌다. 남친이 생겼을까 싶어서 물어보니 그것도 아니란다. 뭘까. 친구는 나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말했다. 친구와 조금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다.
* * * * *
어제 신나게 돌아다니고 오늘 일어나니 가랑이 사이가 아프다.
혜아룜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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